조선의 비극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은 영국 기자의 눈으로 과거 우리나라 발자취의 여러 단면 중에서 한일합병 전후의 역사적 실증을 기록한 것으로, 생생하고 예리하게 중국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증인들의 기록을 적은 역사기행서이다. 열강들 속 치욕스런 과거의 저항과 대립, 반목의 정치, 사회의 비화 사건, 증언 등을 전반적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으며 수십 장의 사진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그가 촬영한 27장 사진도 함께 수록하고 있는데 일부만을 포함하였다. 1908년 뉴욕 Dutton출판본을 참고하였으며 모두 21부 중에서 12부까지를 완역하였다.
[서평]
-본문 중에서
18세기의 대단한 지리학자 뒤 알드(Du Halde)는 고려 백성을 ‘일반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애교가 있고 온화한 성질이며 한문을 이해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음악과 무도에 열중한다.’라고 서술하였다.
내가 조선에 처음 왔을 때 외국인으로 처음이었으며 진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온 사람처럼 여겼다.
모든 것이 무척 우스꽝스럽고 혐오스럽고 기이한 세상의 일부로 신기하게 달라 보였으며 시간이 갈수록 자신에게 꿈에서 깨어난 것이 아닌가 물어보았다. 여러 관점에서 유럽인과 미국인이 처음에 나라에 도착했을 때 본 조선의 제도는 그들이 과거 중국의 500~600년 전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다.
10월 13일 미우라, 스기무라, 오카모도(岡本)는 조선군무부와 궁내부의 고문, 그들의 음모 계획을 결정하기 위해 공사관에게 모였다.
11월 초 이토 히로부미 후작은 일본 황제의 특명사절로 미카도(일본 천황)의 친서를 들고 그는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그것이 필수이므로 조선 황제는 후작의 지휘에 따라 그와 한 협약을 하기로 한다는 친서를 들고 서울에 도착하였다.
제물포라는 도시는 거의 모두 일본인 거류지인데 그곳의 수도문제는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통감부에서는 친절하게도 이 항구의 수도시설 착공에 그 나라 차관 중 230만 엔을 소비함에 동의하였다.
다나카가 1906년 말 서울에 체류하고 있을 때, 그는 한 일본인 골동품 상인과 가까이하게 되었는데, 그는 송도(松都)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풍덕이라는 지방에 매우 유명한 고탑이 있는 것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