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라
마광수의 소설 『돌아온 사라』는 1990년대 외설이라는 이유로 판금된『즐거운 사라』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돌아온 사라』는 『즐거운 사라』출판 당시에 비해 급변한 현시점의 성 관념을 경쾌하고 희화적으로 표현했다.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마광수 교수는 1992년 10월 『즐거운 사라』 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검찰에 의해 전격 구속된다. 외설소설 구속은 세계 최초이다. 『즐거운 사라』 는 판매금지 되었고 지금까지 판매금지가 된 상태이다. 이 사건으로 마광수 교수는 1995년 연세대학교에서 해직된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서 상고기각 되어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8개월에 집형유예 2년이 내려진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 의해 사면 복권이 된다. 1998년 다시 연세대 교수로 복직된다.
특이한 점은 『즐거운 사라』일본어 판이 번역 출간되어 일본에 소개된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권태 → 변태 → 창조〉라는 공식은 모든 예술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절묘한 상징
마지막에 한 얘기가 꽤 근사하게 들렸다. 〈권태 → 변태 → 창조〉라는 공식은 모든 예술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절묘한 상징이었다.
“그럴 걸 가지고 아까는 왜 새로운 변태섹스를 개발해 보자고 했어요?”
“그건 사실 그저 내 희망사항일 뿐이었어.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민주’니 ‘자유’니 하고 아무리 떠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나니까 너무 허무해져서 나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지.”
나는 『즐거운 사라』로 잡혀가 실형 판결을 받은 뒤에도 또 한 번 법에 걸려들었지. 2007년도의 일인데, 이번엔 내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내 글들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걸렸어. 다행히 구속 기소가 아니라 불구속 기소였지만, 그래도 결국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 벌금 200만 원 형(刑)이었어. 그래서 나는 지금 전과 2범(犯) 신세가 된 거야.”
-『돌아온 사라』중에서
우리 사회는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을 묵인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5년 전 〈즐거운 사라〉는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외설적 내용이 있었다’ 라는 이유를 들어 국가 권력에 의해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을 묵인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직장이었던 학교의 교수직에서마저 추방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그의 직장 등 3자 모두가 힘을 합하여 한 작가의 인격을 보복적으로 살해하고 그의 작품 하나를 철저히 생매장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우리 사회는 품위 있는 정조의 고상한 허구만을 창작의 자유로 허용하는 것인가? 또한 그 품위의 기준은 타당한 것이었는가?
[중략]
지금은 작가가 그보다 훨씬 더 야한 내용의 작품을 발표해도 외설이라는 이유로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트집을 잡지 않으며, 사이버 상에 발표되는 문학이 상당부분 대중문학을 선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이버시대의 문학은 전통적인 소설기법의 플롯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즐거운 사라〉처럼 단막의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선호하며 전통적인 text의 규범을 무시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초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념적 투쟁의 집단에 끼어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고 과거 있는 여성은 더러운 여성으로 간주하려는 시대였으나,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개인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여성의 지위는 과거를 따지지 못할 정도로 높아져 가정에 얽매이는 결혼보다 자유로운 독신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는 분명 〈즐거운 사라〉가 지향했던 방향과 일치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즐거운 사라〉 사건은 작가가 의식을 했든 아니했든 간에 이념적으로 구조화된 사회로부터 개인 지향적이고 성적 즐거움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진입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선구적 역할의 진통을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겪은 사건임이 분명하다.”
(『즐거운 사라』의 시대적 가치- 마광수론 : 어느 독자의 글〈문학사조 변환기에 희생된 작가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