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피어나는 평화
이 평론집이 나오게 된 경위를 간단히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914년 전쟁에 대한 고찰은 대부분 당시 <새로운 취리히 신문>에 게재되었다. 헤세는 그 당시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가 언젠가 애국주의와 전쟁정신에 대해서 비판을 가했다는 사실은 독일에 있어서는 두 번 다시 정말로 용서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때는 패전 직후인지라 독일의 어느 국민 층은 대단히 평화스럽고 국제적인 사고방법을 하게 되고 헤세 사상에 대해서도 많은 영향력과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불신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국가 지상주의가 최초의 성공을 거두었던 훨씬 전부터 그는 공적인 독일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수상한 인물, 할 수 없이 편의상 관대한 처분을 받고 있는 인간, 근본적으로 탐탁하지 않은 인물로 지목되고 있었다. 드디어 히틀러 일당은 그들의 힘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자 대부분의 헤세의 저서, 이름, 그리고 그의 베를린 출판사에 대하여 복수하는 것으로서 쾌재를 부르짖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 목차를 본 독자는 그가 정치적 또는 현실적 고찰을 쓴 기간은 단지 어느 일정한 연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동안 잠을 자고 있었으며 세계역사로 하여금 다시 세계역사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헤세 자신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며 처음 1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깨달은 날부터 하려고 해도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평생의 업적 전체를 종합적으로 관찰해 주는 독자라면 설사 그가 현실적인 평론을 쓰지 않았던 시대라고 할지라도 그들 발밑에 불타고 있었던 지옥의 노여움에 대한 사상과 파국과 대전이 절박한데 대한 공포감이 결코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중에도 내일의 전쟁에 대한 불안에 가득 찬 경고이며 또 그런 것으로서 당연히 도학자의 설교나 교훈처럼 들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단지 미소를 받게 된 <황야의 늑대>로 부터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시대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유리알 유희>의 그림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도처에서 이 문제에 봉착할 뿐더러 시의 세계에 있어서도 이 음조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