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당장이불황을끝내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 5년만의 신작
글로벌 대침체 끝내버릴 초강력 처방!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기침체로 환산된 지 5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끝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경기는 좋지 않고 실업률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더욱이 청년층 실업률이 50%나 되는 그리스·아일랜드·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최악이다.
대표적인 케인시언이자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의 최신작인 이 책은 “대체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가?”라는 뼈 있는 한 마디로 시작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묻는 것은 공허하며 “원인이 아니라 치료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치료법을 제시한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직설적이면서 간결한 표현으로 자신의 처방을 써내려간다.
그가 내린 처방은 다름 아닌 재정 지출 ‘확대’다. 요컨대 달러 더 찍으라는 얘기다. 언뜻 생각해도 더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 그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생각은 주입된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의 철두철미한 논리와 데이터 제시 그리고 사실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처방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현재 미국 경제는 대공황 때와 흡사한 대침체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대공황 당시 경기부진과 부분적인 경기회복이 반복된 것을 고려할 때 현 상황도 이와 비교해 다르지 않다는 진단이다. 그는 “미국 경제가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미국은 ‘겨우’ 2조 5,00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연간 15조 달러 가치를 생산해내는 경제 규모에 비한다면 만회하고도 남는다”고 지적한다.
―삶을 파괴시키는 불황, 미래를 잃게 만드는 정책
크루그먼 교수는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규모 ‘실업’ 사태를 꼽는다. 실업은 개인의 인생은 물론 경제 전반에 총체적 난국을 불러일으키는 심각한 재앙이다. 더욱이 ‘고용’은 단순히 경제적 생산 활동을 넘어 인간 행복의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지금의 실업 문제는 과거와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현 실업 사태가 ‘비자발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그는 “실업률이 증가한 이유는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하려는 의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파의 주장을 언급하며 “5만 명 모집에 100만 명이 모여든 맥도날드 사례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날을 세운다. 또한 “2007년 680만 명에서 2011년 12월 1,300만 명으로 증가”했다는 설문조사도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은 제외된 결과라고 꼬집는다. 나아가 그는 실업 사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염려한다. 그래서 “장기적인 처방 운운하며 지지부진해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마디로 재정 적자보다 ‘일자리 가뭄’이 더 큰 문제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위기에 빠진 각국 정부들이 급박하고 무자비하게 지출을 삭감함으로써 실업 사태는 유럽 주변국들 전반에 걸쳐 대공황 시절의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은 목숨”이라는 케인스의 말을 인용해 “긴축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잃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즉,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 현 시점에서의 긴축은 실업 문제를 심화시켜 경제성장 동력 자체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되는데 자동차는 왜 탓하는가?
“시장은 효율적이며 ‘보이지 않는 손’이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기겁할 얘기겠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오늘날의 불황이 단순한 ‘마그네토 문제’ 다시 말해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해결될 기계적인 문제”라고 설명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 엔진’이 망가지기는커녕 여전히 쌩쌩 잘 돌아가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남편이 자동차 배터리를 갈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배터리를 간다면, 그동안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남편은 가족들에게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타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가족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남편’이다. 때문에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 경기침체가 2000년대 중반에 터진 주택 거품의 결과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한 ‘수요 부족’을 해결하지 않고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실업률이 높고 경제실적이 낮은 이유는 우리(소비자·기업·정부)가 ‘지출’을 충분히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못박으면서 “지출 감소는 고용 하락을 가져왔고 결국 우리 사회는 전반적인 차원에서 심각한 ‘수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그렇다면 과하게 투자됐던 부분 말고 다른 곳에까지 투자 수요가 위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루그먼은 이를 화폐 경제와 시장의 특성 때문으로 본다. 다시 말해 현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유동성 함정은 돈을 빌리는 데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수준으로까지 유동성을 ‘확대’했는데도 여전히 수요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금리를 변경해 금융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회복시킬 수 없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그의 말대로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사람들이 돈을 갖고 있으려고 하지 투자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긴축한다고 위축된 투자 및 소비 심리가 풀어지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국민과 국가의 지출이 곧 국민과 국가의 수입”임을 강조하면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정부마저 지출을 줄이면 도대체 누가 제품을 사겠느냐”고 되묻는다.
―빚 많은 나라의 99% 국민은 무작정 굶어야 하는가?
세계 경제는 기본적으로 ‘화폐’ 경제다. 화폐 경제의 특성이 금융 시스템을 통해 증폭돼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심각한 침체를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거대한 불황은 대개 금융위기라는 특징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학파 경제학 이론처럼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지금의 침체는 어쩔 수 없는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아니다. 지금의 불황은 마치 문제가 생긴 기계 부품 몇 개를 고쳐주면 해결될 수 있는 기술적 고장이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이 부분을 잡아주면 빠른 시간 안에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시장은 이미 자동조절 기능을 상실했고 ‘유동성 함정’ 상황에서는 금리가 제로 수준까지 떨어져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므로 결국 정부가 나서서 투자와 소비를 하라는 것이다.
현 경기침체는 생산인력의 능력이나 설비 부족이 이슈가 아니다. ‘수요’가 부족할 뿐이다. 이 수요 부족을 정부가 채우면 된다. 자금 더 쏟아 채용 늘려서 일자리 가뭄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는 “경기부양책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경기회복을 하는 게 우선이지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상황을 방치하는 건 죄악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화폐 경제의 문제점 때문에 불황이 야기되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침체만 계속된 적은 없었다. 크루그먼은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에 이번 불황이 더 심각해졌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서 그는 금융시장 정책이 ‘나빴다’고 강하게 몰아붙인다. 그는 “대공황의 기억이 희미해지자 1930년대에 도입한 금융 규제 방안들을 하나씩 철폐됐다”고 설명하면서 “금융 규제를 푼 것도 잘못이지만 그것으로 인한 위험한 결과를 감시할 새로운 규제 방안을 세우지 못한 게 더 문제”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런 정책들이 결국 엘리트 집단에 유리하게 작용돼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위 1%나 0.1% 슈퍼 엘리트 집단이 더 부자가 되면서 정책이 더욱 보수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카고학파를 위시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지원사격”했다. 그는 이렇게 개탄한다.
“더 많은 돈은 더 많은 영향력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지금 여기까지 몰고 왔던 정책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상류층 몇몇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덧붙여 그는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정치와 언론 심지어 학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쏘아붙이고 있다.
―대침체의 수렁에서 어찌 인플레이션을 외치는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폴 크루그먼 교수는 계속해서 왜 시장만능주의가 거시경제학의 암흑시대를 낳게 됐는지, 대공황에서 경제를 회생시킨 케인스 경제학이 어떤 이유 때문에 싸구려 경제학으로 치부됐는지, 그동안 시행됐던 경기부양책이 왜 효과를 보지 못했는지 설명한다. 또한 각국 정부 및 주류 경제학계에서 우려하는 재정 적자 해소방안을 제시하고, 정확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을 불식시킨다.
인플레이션 부분만 짚고 넘어가자면 “현재의 불황은 그 침체의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그의 논지다. 제로 금리에 가까운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황인데 인플레이션을 왜 걱정하느냐는 얘기다. 더욱이 수치를 통해 살펴본 결과 금융위기가 터지고 난 뒤 미국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2.5%에 불과해 오히려 과거의 평온했던 시절보다 낮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보다 훨씬 먼저 장기침체를 경험한 일본의 경우 반대로 디플레이션이 나타났다.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채무 부담이 더욱 증가해 불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반대로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채무 부담이 줄어들면 경기회복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여러 연구를 종합해 4%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삼으라고 권한다.
현재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미래는 나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를 걱정하면서 크루그먼 교수는 “이 모든 고통은 애초부터 겪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이 침체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지식과 방법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서야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케인스 경제학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2년 안에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정치적 의지 부족이 회복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크루그먼 교수는 “이제 경제학자로부터 정치적 관심이 높은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움직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기회복에 대한 그의 열망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힘주어 당부한다.
“단언컨대 우리는 지금 당장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들을 위해 지금부터 싸워야 한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