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3
임진왜란, 피로 쓴 교훈
재조산하, 나라를 다시 만들다
광복 70주년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완결편!
◎ 도서 소개
이순신의 죽음과 류성룡의 파직…
백성의 상처는 외면하고 다시 정쟁을 시작한 지배계층.
전쟁은 끝났지만 민족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복 70주년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 3부작 소설의 완결편
조선 최대의 환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 겸 도체찰사(전시의 최고 군직)를 지낸 서애 류성룡이 7년 동안의 왜란을 돌아보며 참회와 경계의 뜻으로 쓴 글을 소재로 한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연출 김상휘, 김영조, 극본 정형수, 정지연) 3부작 소설이 완결되었다. 그간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과 드라마들이 이순신이나 권율, 곽재우 등 전란의 최전선에서 싸워 온 장수들 위주로 묘사된 반면, 〈징비록〉은 전란 시 조선의 행정을 책임진 영의정 류성룡의 시점에서 임진왜란을 다룬 색다른 시도로 방송 내내 숱한 화제를 뿌리며 50화를 끝으로 종영되었다.
동서 붕당으로 국론이 분열된 최악의 시기에 찾아온 미증유의 전란. 무력한 왕은 백성들을 버리고, 왜적의 침략 앞에 금수강산은 사산혈해로 변하고 만다. 이 최악의 시기, 영의정이자 도체찰사가 되어 조선의 행정과 군무를 총괄한 류성룡은 작미법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사력 강화에 힘쓰는 한편, 강직한 성품으로 한직에 머물러 있던 이순신과 같은 인재를 천거하여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다.
환란의 중심에서 류성룡, 이순신, 선조, 광해군 등 여러 인물이 보여주는 리더십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소설 《징비록》은 2015년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고민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이성을 흔들어 깨운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무능력과 무책임에 젖은 대한민국의 권력층을 비추는 죽비소리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는 전쟁의 끝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을 대신하여 민초들을 이끌고 일어선 의병장들의 활약과 권율의 행주대첩, 그리고 바닷길을 철통같이 막아선 이순신의 활약으로 조선은 임진왜란 1년 만에 한성을 되찾는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명나라와 일본은 조선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멋대로 화평을 추진하고, 왜적들은 경상도 일대를 횡행하며 노략질을 일삼는다. 국란을 이겨내기 위해 모두가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한숨 돌린 선조는 분조를 이끌면서 민심을 얻은 광해를 견제하고, 나라를 위해 일어선 의병장의 칼날이 임금인 자신에게로 돌아설까 두려워 의병장 김덕령, 이산겸 등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만다. 또한 일본의 간계와 원균의 무고에 의해 이순신까지 끌려와 혹독한 취조를 당하고 백의종군에 내몰린다.
명나라와 풍신수길 간의 강화 협상이 틀어져 1597년 총 14만의 일본 군대가 다시 조선을 침범하지만, 이제는 육지를 지켜줄 의병도 바다를 막아낼 이순신도 없는 상황. 전란 이후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조선 수군까지 칠천량해전에서 전멸하면서 조선의 병참지대인 전라도를 비롯해 조선 방방곡곡은 철저하게 유린당한다.
그리고 마침내 12척으로 수백 척에 달하는 왜선을 침몰시킨,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기적 같은 승리와 잇따른 육지전 승리, 그리고 풍신수길의 죽음으로 7여년에 걸친 끔찍한 전쟁은 막을 내린다. 이 땅에서 일본군을 모조리 몰아낸 조선의 승리였지만, 기뻐하기에는 잃은 것이 너무나도 컸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를 벗어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류성룡은 왜란 이후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모든 관직을 삭탈당한 채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한다. 눈앞의 위기가 사라지자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에 먼 지배계층들이 다시 정쟁을 시작한 것이다. 낙향하기 전에 류성룡이 선조에게 남기는 말은 2015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하는 싸우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으셨고, 백성들을 버리셨습니다. 최선을 다하다가 물러났다면 백성들이 어찌 궁을 태웠겠습니까? 무릇 나라든 개인이든 사태가 잘못되고, 위태로움에 처한다면 인과를 따져보고, 잘못된 것을 찾아 고쳐야 하는 법인데, 전하께서는 상황과 남의 탓만을 하시고 스스로에게선 잘못을 찾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 하시니, 이 어찌 옳은 군주의 자세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 본문 중에서
명을 받은 전령이 선위의 뜻이 담긴 교지를 들고 그날 안으로 해주로 올라갔다. 광해가 뜻밖의 서찰을 보고 그 속내를 의심할 때 유조인이 거들고 나섰다.
“전하께서도 명의 뜻을 파악한 겁니다. 선위를 받아들여도 되옵니다.”
광해는 도리질을 했다.
“그런 소리 마시오. 한두 번 겪은 내가 아니오. 이는 내게 석고대죄하라는 명이나 같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황상의 칙서가 있었습니다. 전하께서 그 칙서를 보고 황상의 뜻을 거역치 못한 것입니다.”
광해는 고민스럽지만 류성룡의 말을 떠올렸다.
“영의정은 내게 아직은 때가 아니라 했소.”
“당연히 그럴 테지요. 류성룡은 전하의 사람입니다. 전하께서 물러나면 당연히 함께 물러나야 합니다. 명이 저하를 원할 때 선위를 받으시옵소서.”
“아무래도 사헌을 만나보아야겠소.”
그때 문밖에서 꾸지람이 들려왔다.
“저하, 이 나라를 망치고 명에게 나라를 바칠 셈입니까!”
두 사람은 당혹했다. 조선에서 광해에게 꾸지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선조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문밖의 목소리는 선조가 아니었다. 광해는 설마 싶은 생각에 문을 벌컥 열었다. 뜻밖에 달빛 아래에 류성룡이 서 있었다.
“영상이 어찌 이곳에…….”
-88~89쪽
“선조는 또 한 번 믿을 수 없었다.
“전멸…… 전멸당했다 했소?”
이항복이 황송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전하…….”
“하늘이…… 하늘이 이 나라를 버리시는 것인가.”
“우리 수군이 전멸당한 것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오나, 이리 주저앉아서는 아니 되옵니다. 왜적은 곧 전라도를 공격할 것이고, 한성으로 북진할 것이옵니다.”
이항복이 계책을 냈다.
“다행히 명군이 전라도 남원에 3000, 충청도 충주에 4000의 군사를 진주시켜 두었으니 우리도 서둘러 군사를 배치시켜 적을 방비해야 하옵니다.”
선조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황없이 ‘그래야지, 그래야지’ 되뇌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명을 내렸다.
“비변사에서 어서 논의해 우리 군사들을 편제하시오. 아! 그리고 이순신, 이순신을 다시 통제사로 복권시켜야 하지 않겠소? 뭐 좀 미안하긴 하지만. 영상, 그리 하는 게 맞지요?”
류성룡은 그런 선조를 안타깝게 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 그리 하시옵소서.”
―212~213쪽
가등청정이 말에 올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조선 땅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할 때, 조선의 다른 한 남자는 눈을 빛내며 앞날을 구상했다.
“전란이 끝났습니다. 나라를 복구하고 새 시대를 이끌어갈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산해의 굳건한 말에 윤두수는 마시려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류성룡이 이끄는 지금의 조정을 바꾸자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색이 다르다고는 하나 전란을 극복하는데 있어 류성룡 대감과 남인들의 공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공을 인정합니다. 허나, 태조대왕의 역할이 건국이었고, 나라를 융성하게 만든 것이 세종대왕의 역할이었듯이 서애와 남인의 역할은 이제 끝났습니다. 서애는 지금 모든 양반 지주들의 공적이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대간들도 나설 테고……. 무엇보다, 주상께서 이미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전하를 도와 이 나라를 다시 세워야지요. 또한 이는 세자의 뜻이기도 합니다.”
윤두수는 그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전쟁 시대의 인물들이 계속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 사람 또한 나라를 망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남인들의 독단에만 나라의 재건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힘을 보태도록 하지요.”
며칠 후 행궁 앞에 양반들과 지주들이 모여 수십 장의 상소를 올렸다. 그 앞에 유조인과 이이첨이 버티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왜적과 화의를 주장했던 류성룡을 파직하시옵소서! 류성룡을 파직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와 다를 것이 없어집니다. 류성룡을 파직하시옵소서.”
선조는 그 말을 들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버리는 것이 아니다. 류성룡은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 전란 중이었으니 개혁이 필요했으나 이제 전쟁은 끝났다.”
― 245~2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