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 도서 소개
탐욕과 분쟁, 부조리와 불안이 압도하는 시대,
고전에서 진리의 길을 갈구하다.
현대 사회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또한, 정교한 기술과 잘 짜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화려한 외피를 한 꺼풀만 벗겨 내면 앙상한 실체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충족을 모르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허상만 좇아 달려갈 뿐이다. 그 속에서 생명력이 충만한 진정한 기쁨은 잊고 산다. 고독하고 초라하며 불행한 삶을 이어간다.
어떻게 하면 이 불행을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행복의 본연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인문학자로서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천착해온 성균관대학교 이기동 교수는 그 해답을 ‘진리’에서 찾았다. 진리에 대한 저자의 오랜 성찰과 탐구의 결실을 담은 『진리란 무엇인가』(21세기북스)는 진리가 무엇인지, 왜 진리를 잃게 되는지, 진리를 잃은 뒤 삶의 모습이 어떤지를 돌아보고 진리를 되찾으려는 실천을 통해 본연을 회복하고 완성할 것을 역설한다.
저자의 전문 분야는 ‘유학’이다. 그는 대학에서 논어·맹자와 노자·장자를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기독교 바이블과 불교의 경전까지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것은 “서로 다르게 보이는 진리의 말씀들을 하나로 종합할 때 오히려 진리의 모습이 하나의 체계로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이 풀리지 않을수록 ‘진리’에 집중하라!
사서삼경, 노자·장자, 바이블, 불교경전에 공통되게 담긴 진리 체계
이 책이 말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와 인간의 본연의 상태이다. 즉 하느님의 몸과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다. 나와 타인, 만물의 인위적 구별이 없는 혼돈의 상태이며 자연 그대로이다. 하지만 나를 구별하고 내 것을 챙기고 나의 감각적 만족을 추구함으로써 진리를 잃는다. ‘나’는 기억이 뭉쳐진 허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돈이 일체의 분별이 없는 흐리멍덩한 상태는 아니다. 혼돈의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진리를 회복시키고 확장하는 길이다.
진리를 상실은 하느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욕심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참된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 친구를 잃고 고독에 빠진다. 얄팍하고 피곤하며 초라하고 불쌍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인정이 메마르고 욕구불만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다. 가진 자의 횡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절제력을 잃는 충동의 삶이 이어진다. 진리를 잃고 욕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법과 규칙 또한 폭력의 무기로 변질된다.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고 인간성과 자연환경이 파괴된다.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회복해야만 한다. 이 책은 고전 속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진리를 회복하는 길에 대해 상세히 제시한다. 나와 타인, 나와 자연을 구별하고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이 그 근본이다. 학문과 깨달음, 믿음을 통해서도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반성하고 뜻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예절과 계율은 진리로 이끄는 기준이 되어준다. 명상을 통해 ‘나’라는 착각 덩어리를 지울 수 있다. 진리를 성실하게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회복하고 진리에 가깝게 나아갈 수 있다.
진리가 회복될 때 나와 세상은 잃어버렸던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된다. 나와 타인을 구원하며 완성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은 선현들이 꿈꾸던 ‘대동사회’이며 ‘지상천국’이 건설되는 경지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나’가 없으면 ‘남’이 없으므로 남에게 부끄러울 일이 없고 남과 경쟁할 일도 없다. 남과 경쟁할 일이 없으므로 긴장할 일도 없다. 승리의 기쁨도 없고 패배의 슬픔도 없다. ‘나’가 없으면 몸은 자연이다. 태어나는 것도 자연이고, 늙는 것도 자연이며, 병드는 것도 자연이고, 죽는 것도 자연이다. 생로병사가 따로 있지 않고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므로 생사일여(生死一如)다. 생사일여이므로 늙음의 쓸쓸함도 없고 죽음의 고통도 없다. (18쪽)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 속에 온갖 그림을 그려 넣고 그것에 집착하고 얽매인다. 그리고 그것대로 되지 않을 때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의식 속에 그려 넣은 그림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므로 그로 인한 고통은 헛것에 홀려서 받는 고통이다. 사람이 자신의 의식 속에 그려 넣은 거짓 그림을 우상이라 한다. 우상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신’이다. 사람들 중에는 진짜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식 속에 그려 넣은 신을 믿는 사람이 많다. (90쪽)
규칙과 법을 만들어 지키는 것은 욕심을 마음껏 채울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만들어낸 이차적인 목표이다. 이차적인 목표가 늘 일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공존하기 위해 만든 규칙과 법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때는 오히려 세상을 더 혼란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강자는 규칙과 법을 공평하게 만들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약자의 것을 빼앗는다. (156)
시간과 공간에서 해방되고 의식에서 벗어나면 ‘나’가 사라진다. ‘나’가 사라지면 ‘나의 삶’과 ‘나의 죽음’이 동시에 사라진다. 이른바 무생사의 세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의식의 구별 기능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에서 해방되고, 삶과 죽음에서 해방된 모습이 혼돈이다. 세상에서 분별하면서 살던 사람이 혼돈의 모습을 회복하더라도 분별하는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 아니다. 혼돈을 회복한 사람은 혼돈의 모습으로 분별하면서 산다. 분별하면서 사는 것은 혼돈의 확장이다. 혼돈의 모습을 회복한 사람은 분별하면서 살아도 혼돈이다. (290쪽)
자로와 염유, 공서화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지만, 증석은 달랐다. 늦봄에 봄옷을 입고 사람들과 어울려 소풍이나 다녀오겠다고 했다. 당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혼란한 때였다. 그런 때에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않고 소풍이나 다니겠다는 제자를 공자가 인정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신이 안 된 사람이 나서서 다스리면 문제가 더 커진다. 자로와 염유, 공서화는 수신보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에 더 급급했다. 그래서는 세상이 제대로 다스려질 리가 없다. 수신해서 한마음을 회복한 사람이 나서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한마음을 얻은 사람은 세상을 다스리지 않아도 된다. 그에게는 이미 이 세상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3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