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키나 쇼키치
키나 쇼키치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오키나와 민요 명인이자 산신(일본 전통악기) 속주의 달인 키나 쇼에이의 아들이기도 하다. 1976년 발매한 앨범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에 수록된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은 공전의 인기를 끌며 오키나와에서만 30만 장이 판매되었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가 100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인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일본 평론가가 뽑은 100대 명반 중 35위에 랭크된다.
키나 쇼키치는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하다.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음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펼쳤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모든 무기를 악기로, 모든 기지를 화원으로, 전쟁보다 축제”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1980년 오키나와 문화, 산업, 정신을 소중히 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우루마 축제’, 1986년 기아로 고통받는 주민을 위한 필리핀 마닐라 네그로스섬 지원 콘서트, 1997년 북한 식량 지원을 위해 수차례 진행한 ‘아리랑에 무지개를’ 자선 콘서트, 1998년 3주간에 걸쳐 미국 대륙을 횡단한 백선(White Ship of Peace) 축제, 2003년 이라크 평화 가두행진 등의 활동으로 드러나듯 평생을 평화 일직선으로 살아왔다.
일본에서 남한과 북한 청년단이 주최하는 ‘도쿄 통일마당’ 행사에 해마다 참여해 〈아리랑〉을 부르고 분단된 한민족 현실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공연, 1999년 10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종교와 문화 포럼’ 초청 공연, 2000년 광주 5.18 20주년 기념 공연 등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2년에는 북한 평양 공연에 참여했다. 키나 쇼키치는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2차 개방으로 2000석 이하 규모의 내한 공연이 가능해진 후, 1999년 9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한 일본 음악인이기도 하다.
밥 말리(Bob Marle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키나 쇼키치의 음악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고 표명할 정도로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2019년 현재 71세인 그는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다.
김창규 묻고 키나 쇼키치 답하다
류큐왕국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존속했다. 일본에 무력으로 병합돼 반강제적으로 ‘오키나와현’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버려지는 돌로 취급돼 지상전에 떠밀려 주민의 4분의 1이 죽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 27년간 양도되어 군사기지가 잔뜩 세워졌으며 1972년 반환된 이후에도 갈등 상황은 여전하다.
키나 쇼키치는 1948년생으로 미국이 오키나와를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났고, 일본을 다른 나라로 생각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음악 활동을 하다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회로 갔고(키나 쇼키치는 전직 참의원 의원이다) 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하기도 했지만(오키나와현지사 선거), 그가 최종적으로 안착한 곳은 ‘평화’였다. 그것도 무려 ‘세계 평화’.
키나 쇼키치는 인간을 국가나 이념, 종교나 민족에 한정해 보지 않는다. 오직 개인이다. ‘위정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오키나와인의 매력에 더해 제멋대로 살고 제멋대로 말하고 그 말을 온전히 책임지며, 미덕도 악덕도,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모조리 받아낸 이 남자는 유쾌하고 씩씩하다.
《딴지일보》 김창규 편집장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평화를 노래하는 키나 쇼키치를 만났다. 2017년 한국에서,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2019년 일본에서 이어진 인터뷰에는 키나 쇼키치의 삶, 음악, 평화 이야기가 녹아 있다. 2017년 첫 만남 때만 해도 남과 북은 언제 전쟁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긴장 국면이었다. 하지만 그때 키나 쇼키치는 평화가 급진전될 수 있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남북한이 분단 상황을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불과 2년 만에 그의 생각이 사실로 드러났다.
키나 쇼키치의 대표곡 중 하나인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이란 노래는 60여 개국에 리메이크되어 세계적으로 30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세계적인 위상에 비하면 한국에선 키나 쇼키치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는 남북 관계의 진전을 바라며 매년 아리랑을 부른다. 그의 마지막 꿈은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키나 쇼키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이제 키나 쇼키치를 발견할 때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