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뒤뜰을 거닐다
언론인 전호림이 기록한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바라본 세상 이야기 《시간의 뒤뜰을 거닐다》의 저자 전호림은 매일경제신문에서 20여 년간 글밥을 먹은 타고난 글쟁이다. 이 책은 그가 〈매경이코노미〉에 국장으로 3년 반 동안 재직하면서 매주 쓴 ‘전호림 칼럼’ 중 호평받은 작품만을 모아 놓은 것이다. 경제 주간지의 딱딱함을 피하고자 한번은 ‘에세이’로 한번은 ‘칼럼’으로 쓰는 정성을 기울였다. 책 전반부에는 진한 사람 냄새가 난다. 허기로 남은 보리밭의 추억, 더운 여름 밤 다디달게 먹었던 수박 화채, 적막한 산사에서 얻은 깨달음을 읽고 있자면 그 시절 기억이 손에 잡힐 듯 떠오른다. 후반부에는 본격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인재가 전부인 나라, 그나마도 허리가 끊어진 이 작은 국토는 오늘 아웅다웅 말다툼하기에 바쁘다. 이를 참지 못해 개인, 기업, 정부에 조목조목 “이래서 되겠느냐”며 날카로운 펜을 들이댔다.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자. 따뜻한 감성으로, 냉철한 이성으로 일필휘지로 써낸 글들이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가버린 시간, 못다 한 꿈을 되짚다 사람 한평생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5060이라면 조금씩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의 저자 전호림도 마찬가지다. 그는 ‘쉰을 넘기고부터는 생각이 많아졌다. 얼토당토않게 한번 생각의 꾸러미가 풀리면 감당이 안 될 때가 많았다’고 토로한다. 이런 그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전반부인 1·2·3장에서는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부드러운 이야기를 담았다. ‘1장 아름다운 시절에’는 가난하지만 충만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명절이면 아이들을 몰고 다녔던 뻥튀기 장수, 사람에 맞춰 그 양을 늘렸던 어머니의 손국수(늘인국) 이야기에 공감할 독자가 많을 것이다. ‘2장 사람 사는 풍경’에서는 기자로 만난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정을 위해 자신을 모두 비워낸 아버지를 공광규의 시 <소주병>을 인용한 대목을 읽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3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는 세상사 단면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조망한다. 폭탄주, 사과꽃 같은 작은 사물에서도 삶의 진리가 녹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언론인이 기록한 조국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후반부인 4·5장에서는 언론인 본연의 모습으로 개인·기업·사회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다. 사실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비판할 게 많은 나라다. 압축성장을 하느라 속을 채우지 못하고 휙휙 지나는 바람에 어떤 사안이든 엿가락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4장 기업, 나라의 살림밑천’에서는 도전 정신이 부족한 기업, 오만하고 부패한 기업의 면면을 낱낱이 파헤쳤다. 단기의 이익만 바라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다가는 결국 국가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는 비판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5장 국가란 모름지기…’에서는 사회 전반과 정부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이댔다. 고유문화를 말살하는 도로명 주소에 대한 비판부터 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현장까지 조목조목 짚어낸 그의 글 속에는 한결같이 조국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