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페미니즘이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모든 페미니스트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중에게 알려 준다.”(1쪽)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의 복잡성만큼 다양한 실천의 흐름을 만들어 왔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론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페미니스트들이 각자의 경험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여성 해방’이란 핵심을 잃지 않고 정치적 실천을 이어 왔음을 보여 준다. 페미니즘의 수많은 관점들을 열 가지 범주로 정리해, 독자들이 페미니즘에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또한 열 가지 범주의 페미니즘이 형성된 시대적 맥락과 그 안에서 싸웠던 실천가들의 고민을 생생하게 그림으로써, 실천이자 운동인 페미니즘이 복잡한 현실의 지형 속에서 전개되어 왔고 또 전진해 갈 것임을 알게 한다. “다른 모든 관점에 대해 승리하는 한 가지 관점을 찾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의 말미에서 결국 실망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어떤 문제에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 향상, 재고, 확장”하는 페미니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참정권에서부터 인공 재생산, 채식주의, 사이보그까지 여성의 삶 곳곳의 문제를 담았다
“급진주의 자유의지론 페미니스트들은 … 여성이 오래된 출산 통제 기술과 새로운 출산 보조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원치 않는 임신을 종결하거나 예방하고, 혹은 대안적으로는 여성이 원하는 때에(갱년기 이전 또는 갱년기 이후에), 여성이 원하는 방식으로(자신의 자궁에서 혹은 다른 여성의 자궁에서), 여성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여성, 남성, 혹은 혼자서) 아이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급진주의 자유의지론 페미니스트들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체외발생(인공 자궁에서의 체외 수정)이 자연 임신 과정을 완전히 대체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4쪽)
이 책은 몇십, 몇백 년 전부터 제기되었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부터 21세기에 새롭게 제기된 문제까지 여성의 삶 곳곳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다. 성매매는 근절의 대상인가? 출산 능력은 여성의 힘인가, 해방을 가로막는 덫인가? 모성 본능은 실재하는가? 페미니스트의 섹스는 어떠해야 하는가? 여성과 자연의 연관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희생해야 하는가? 등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들과 그것을 둘러싸고 다양한 관점이 교차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페미니즘이 삶과 동떨어진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세계의 무언가가 아니라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서 시작하는 질문·논쟁·실천임을 알게 해 준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라
“도로시 디너스틴과 낸시 초도로는 특히 오이디푸스 이전의 단계와 오이디푸스 단계를 설명할 때, 인종 그리고/혹은 민족적으로 다르게 구성된 가족들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양쪽 부모가 있는 백인, 부르주아, 이성애자 가족 구조의 관점에서만 설명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부모 가족부터 혼합 가족과 대가족에 이르는 많은 종류의 가족 구조가 존재한다. 더욱이 동성애자 커플이 아동을 양육할 때와 같이 한 아동의 부모의 성별이 같은 경우도 있으며, 아동에게 부모가 한 명이거나 없는 경우도 있다. 만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정말로 보편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서로 다른 가족 구조 속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보다 풍부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290쪽)
이 책의 각 장 끝부분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등 해당 장에서 소개한 페미니즘 관점에 대한 비판과 ‘토론을 위한 질문’이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구성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에 정답이 없음을 보여 주며, 각기 다른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페미니즘적 사고임을 알게 해 준다. 강의실에서 교수자와 함께 이 책을 만나는 독자들은 물론, 스스로 페미니즘 관점들을 이해·학습하고 자신이 어떤 입장에 서 있으며 계속해서 고민하고 질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1989년 첫 출간 이후 30년간 전 세계 여성들에게 읽힌 페미니즘의 교과서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페미니즘의 주요 작업은 인간 억압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특히 그 억압의 문제는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권력 구조에 의해 역사적인 존중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생각과 행동과 삶에 드러나 있다.”(486쪽)
이 책은 1989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어 다섯 차례의 개정과 6개 국어로의 번역을 거쳐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특별히 2013년에 개정 출간된 4판부터는 유색인종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 재생산 문제를 보다 자세히 다루고 여성 경험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유색인종 페미니스트’인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가 저자로 함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대학에 여성학 강좌가 개설되고 수강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인 1995년에 이 책이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 출간, 2000년에 개정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 절판된 지 10년 만에 원서 5판을 새로 번역해 출간된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은 2019년을 살아가는,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다시 모인 한국 여성들을 만나 새로운 연대와 실천의 역사를 써 갈 것이다."